어떤 대화 메모

은행나무는 이제 막 은행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을 뒹구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나무가 말했습니다.

나무 :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남자 : 믿지 않습니다.
나무 :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남자 :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 : 그것이 전부입니까?
남자 : 실은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나무 : 무엇입니까?
남자 : 신이 있다면 인간을 이렇게 아픔 속에 방치해 둘 리가 없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은행나무는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사이에도 은행잎은 쉬지 않고 떨어져 바닥을 뒹굽니다. 은행나무가 다시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무 : 당신은 사랑을 믿습니까?
남자 : 믿습니다.
나무 : 그것 역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 않습니까?
남자 : 느낄 수는 있습니다.
나무 : 하지만 그것 역시 매우 당신을 아프게 하고 무척 가혹하지 않습니까?
남자 : .....
나무 : 어째서 똑같이 당신을 아프게 하고 가혹하게 대하는 데 신은 믿지 못하고 사랑은 믿는 겁니까?
남자 : 모르겠습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신이 아니라 나의 신일 뿐이니까.
         신을 믿지 못하고 사랑을 믿는 게 논리적이지 않다고 따지면 할 말이 없습니다.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저 내게는 신 보다 사랑이 더 필요한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 : 사랑을 필요에 의해서 한단 말입니까? 신에게 복권 당첨을 빌러 오는 사람들처럼 당신도 당신의 필요에 의해서입니까?
남자 : 사랑에게 복권 당첨을 빌지는 않습니다.
나무 : 하지만 당신의 필요에 의해서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 아닙니까?
남자 :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쩌면 나는 사랑의 사이비 신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행나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남자의 발길 앞에 수북이 노란 은행잎 길을 만들어줄 뿐이었습니다.








가면 메모

 거리는 가면들로 가득 메워졌다. 정부에서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을 법제화했다. 마스크가 가면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지 오염된 공기를 호흡하지 않기 위해 쓰이던 마스크는 점차 패션의 용도로 변해갔다. 천편일률적인 흰색 면 마스크는 사람들의 개성 추구 본능과 충돌했고 그걸 예감한 상인들은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마스크를 생산해 냈다. 무엇이 먼저 였을까? 본능 충족을 위한 사람들의 요구가 먼저인지, 상인들의 부추김이 먼저인지 알 수 없었다. 마스크의 변신은 점점 더 대범해졌고 기본에 충실한 본래의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변해버린 마스크는 더 이상 마스크가 아니라 가면이었다. 하긴 마스크의 본래 뜻이 가면이니 어떻게 부르건 큰 관계는 없겠다.

 남자는 경찰에 쫓기고 있다. 출근을 서두르느라 마스크 쓰는 걸 깜빡 잊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그와 마주친 사람들은 마치 바바리 맨이라도 만난 것마냥 비명을 질러댔다. 그제야 남자는 실수를 깨달았다. 때는 늦었다. 이미 여러 통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사방에서 남자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는 뭔가 변명을 하려는 듯하다가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났다. 변명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경찰의 눈빛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왜 다들 마스크에 집착하는 걸까? 단지 바이러스 때문은 아닌 듯했다. 일종의 음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맨 얼굴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아니 실은 두려움을 갖게 했다. 수백 개의 얼굴 근육은 말보다 더 많은 진실을 표출해 냈고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진실과의 조우에 공포를 느꼈다. 모두가 가면을 쓴 세상, 고의든, 실수든 상관이 없었다. 가면을 쓰지 않은 민낯, 그 사람 자체가 이미 바이러스가 돼 버렸다.




별 이야기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폴라리스를 찾으면 된대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별들은 자리를 옮기지만
폴라리스만큼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거든요.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까....

- 겨울연가 中 -

(* 폴라리스 = 북극성)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무작정 쓰기

빨강, 노랑, 파랑....

우린 신호등의 색깔을 이렇게 구분하죠. 빨노파.

하지만 실제 신호등 색깔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빨간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파란색은 더더군다나 아니죠.

도대체 빨간색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빨간색이고

노란색은 또 어디서 어디까지가 노란색일까요?

명도, 채도 몇에서부터 몇 까지가 파란색인 걸까요?

사랑도 신호등을 닮았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사랑이 아닌 걸까요?

신호등과 사랑은 참 안 닮았어요.

빨강, 파랑으로 정지와 진행을 안전과 위험을 명확히

구분해 내는 신호등이지만

사랑은 그게 참 어려우니까. 참 명확치 않으니까.

그래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다 불나방 같다고 하나 봐요.

빨간불인지, 파란불인지도 모른 채

다들 차도로 발을 내려놓고 있으니까.


놓아야 할 때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있다.

 밧줄이 두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절벽에 매달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놓아야만 한다. 그 밧줄에 매달린 사람 중 한 사람이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라면 줄을 끊어야겠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비정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니까.

 탤런트 이광기씨의 아들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제 겨우 일곱 살. 다행이다. 아직은 세상의 비정함 따위는 맛보지 못했을 테니까. 불행이다. 그 애비는 이제 스스로 비정해져야만 할 테니까. 애비는 줄을 끊어야만 살 수 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 어떤 밧줄보다도 가장 질기고 강한 줄, 그가 끊어야 할 줄은 바로 혈연이니까. 그러나 끊어야만 한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하니까. 굳이 위로하지 않겠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

 얼마 전 한 외신에 울먹였다.  6살난 꼬마 아이가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인형 처럼 예쁜 아이였다. 어린 소녀의 이름은 Elena. 아이는 잔망스러웠다. 떠날 날을 알고 집안 곳곳에 편지를 숨겼다. 그것도 수백 통이나. 아버지가 늘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 어머니의 책갈피 안에, 옷장에, 어린 여동생의 노트에 Elena는 편지를 숨겨뒀다. 온통 하트로 가득 채운 편지를, I love dad, I love mom, I love Grace 하고 적힌 편지들을. Grace는 Elena의 여동생이다.
 Elena의 부모는 남겨진 편지들을 모아 책을 펴냈다. 제목은 'Notes left behind'. 수익금은 전액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쓰일 거라고.

 누구에게나 밧줄을 놓아야 할 순간은 온다. 때로는 내가 혹은 그가 먼저. 그 순간이 오면 슬퍼하되 서러워 하지는 말자. 아파하되 분노하지는 말자. 놓아야 할 때는 놓아야 한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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