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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씨 메모

    5년 전쯤이었다. 6살이었던 벼리가 말했다.

    "아빠, 집도 씨를 뿌리고 물을 줘서 자라나면, 집이 생겼으면 좋겠다. 
     집씨는 어디서 팔아? 공사해서 지으면 힘들잖아."

    당시 벼리는 왜 이런 말을 했던 걸까?
    집이 좁다고 생각했던 걸까?

    집씨라.... 아무튼 기발한 생각이라 적어 둔다.

    집씨. 정말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스크림 내가 쓴 시

    언마음 주체 못하고 떠나버린 너
    생각했다 얼음 부스러기는 닿기도 전에 녹아 버리고 
    네게로 가는 길은 어디로 나있는지

    줘도 못먹냐는 비아냥인지 푸념인지가 
    어디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만 어쩌랴 
    마음 뜨거울 때만 네 생각 간절해지는 걸

    한번도 냉정할 수 없었다
    네 냉랭함도 실은 뜨거움이 만들어놓은 것임을 
    안다 너에게도 뜨거웠던 때가 있었지

    밤새 널 먹고 싶었다
    밤새 널 핥고 싶었다

    사모인지 욕정인지
    분간할 재간이 없다
    하여 함부로 뜨거운 혓바닥 내밀지 않기로 한다


    차맛, 술맛.... 사람 맛 무작정 쓰기

    예쁜 다기 주전자에 국화차를 우려냈다. 스텐레스 주전자가 아니라 다기 주전자여서 좋았다. 몇 해 전 선물을 받았지만, 그동안 쓸 일이 없어 장식장의 소품으로만 존재해 왔었다. 우연히 국화차가 생겨 다기 주전자를 꺼내 보았다. 끓인 물을 주전자에 담고 망에 말린 국화를 담아 주전자에 넣었다. 몇 분 후 잘 우러난 국화차를 찻잔에 따랐다. 노란색 물이 잘 우러났다. 한 모금 마셔 보았더니 그윽하게 밀려오는 국화향이 좋았다. 

    요즘에는 어쩐지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새삼스레 느꼈다. 차는 찻잔에, 커피는 커피 잔에 마셔야 제 맛이 난다는 걸. 소주는 소줏잔에, 맥주는 유리 컵에 막걸리는 사발에 마셔야 제 맛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그나저나 술도 그렇지만 차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좋은 차에, 좋은 주전자, 좋은 잔을 써도 한 가지가 빠지면 영 싱거울 수밖에 없었다. 함께 마실 좋은 사람이 빠지면 그게 다 말짱 도루묵이었다. 차맛, 술맛.... 알고보면 그게 다 사람 맛이 결정하는 것.

    충고와 비난 <펌> 미분류

    충고와 비난

     

    충고는 비난이 아니다.

    악한 의도를 가지고

    나쁘게 말하는 것이 비난이다.

     

    악한 의도로 비난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거늘

    하물며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선하다고 할 수 없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충고도 비난으로 알기 때문에

    스스로 어리석음을 재촉한다.

     

    충고를 할 때 비난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상대의 입장을 무시하고 옳은 것만 말하면

    충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난으로 받아들인다.

     

    충고할 때 훈계를 하는 것처럼 억압하면

    상대가 충고를 수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키면 진정한 충고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오만을 드러낼 수 있다.

     

    충고를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잘못이지만

    충고를 비난으로 알게 하는 것도 잘못이다.

     

    충고를 할 때는 먼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관용과 자애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충고하지 말아야 한다.

    비난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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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고하지 말라, 굳이 해야 한다면 권유에 그칠 수 있길....




    단어의 무게 메모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때 '희망을 가집시다' 라거나 '진실이 이깁니다' 라며 서둘러 두루뭉술 결론을 내리고 말 때가 있다. 그럴 땐 희망이나 진실이란 단어가 참 힘이 없게 느껴진다. 참 가볍게 느껴진다. '희망'이란 단어 앞에는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한'이라는 말이, '진실'이란 단어 앞에는 '무기력한'이란 말이 생략돼 있는 것만 같다. 희망과 진실.... 본래 참 무거운 의미의 단어이건만 왜 이렇게 가벼워진 걸까? 무엇이 희망에서 희망을, 진실에서 진실을 빼어가 버린 걸까? 희망이 현실로 이뤄지는 세상, 진실이 진실로 대접 받는 세상을 만나 본 적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겠지. 희망과 진실, 두 단어가 하루빨리 제 무게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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